[장편괴담] 토우뵤우츠키 : 뱀을 모시는 가문 3 (끝)
번역: NENA(네나)
그때의 기억이 거의 없긴 하지만,
어느 틈엔가 사람이 왔고
어느 틈엔가 장례가 치러졌고
어느 틈엔가 나는 먼 친척 집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지적당해 알게 됐는데,
내 목에는 옅게 뱀이 기어오르는 듯한 줄모양의 멍이 생겨있었다.
솔직히 이제 어찌 되든 상관이 없다.
점도 그렇지만...
평생 분의 눈물을 흘린 탓인지
대부분의 감정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나는,
친척 아저씨가 내게 손대기 시작했을 때도
그의 아내가 내 식사로 빵 한 조각 밖에 내주지 않게 됐을 때도
반 여자아이들이 내 신발이나 체육복을 숨겼을 때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무슨 짓을 당하든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런 나와는 대조적으로
목의 멍은 나날이 색이 진해져 갔다.
마치 내 상처의 감정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마음이 텅 비게 된 이후로 몇 년이 지나고
고등학교도 졸업 근처일 무렵.
오랜만에 할머니 성묘를 가게 됐다.
할머니 무덤 앞에서 손을 모으자,
「아키야.」
하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조금 옛날 일이 떠올랐다.
친척 집과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차로 갈 수 있다고는 해도 꽤 멀었기에
그날은 근처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왜인지 나는 아기처럼 작았고
할머니에게 안겨져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미소 지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아키야, 이제 괜찮아. 네 인생을 살아가렴.」
「지금까지 괴로웠지. 하지만 괜찮아.
할머니가 토우뵤우님과 기도하고 있으니까.」
그런 할머니의 목에는 하얀 뱀이 감겨 있었는데,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따금씩 뱀이 입을 벌리며 나를 물려고 했지만
할머니의 목에 걸려있어서인지 나를 물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
내가 그렇게 소리치자
「아키야, 할머니는 계속 아키를 지켜보고 있어. 쭉 네 편이란다.」
그렇게 말하며 할머니는 내게 미소 지었다.
거기서 나는 눈을 떴다.
몇 년 만일까.
양쪽 눈에서는 끝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둑이라도 터진 듯, 마음속에 감정이 흘러넘쳐서
아침까지 구역질이 날만큼 계속 울었다.
다음날 아침, 새벽부터 아침까지 우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지만, 내 마음은 아주 깨끗해져 있었다.
성묘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일요일.
평소처럼 숙모가 일을 나간 오후.
평소처럼 아저씨가 내 방에 들어왔다.
그의 거칠거칠한 손이 내 몸에 닿은 순간,
머리끝이 곤두설 만큼 혐오감이 전신을 훑었다.
지금까지 분명 아무것도 느껴지는 일이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나는 그를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 개새끼야──!!」
지금까지 입에 담아본 적 없는 사나운 단어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입으로 나왔다.
걷어차여 엉덩이를 찧은 아저씨는
잉어마냥 입을 뻐끔거렸다.
그런 한심한 모습을 보니, 왜인지 부글부글 화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꼬리를 물듯 끝없이 그에게 미친 듯이 욕을 했다.
따로 준비한 적도 없는데
지금까지 니가 했던 짓을 모조리 경찰에 꼰지를 거라고
숙모랑 잘 살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는 등의
협박하는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러자 아저씨가
「지, 진정해, 일단 진정하고.」 하는 말만 하며
눈을 크게 꿈벅거리며 허둥대는데
그 모습이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집을 나갈 것이고
내 방에 두 번 다시 들어오지 말 것을 약속받았다.
아저씨는 그저 「알겠어, 알겠습니다.」 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그날부터 아저씨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태도가 서먹해졌다.
명백하게 내게 겁먹은 형세로,
내 기분이 어떤지 항상 묻는 듯한 태도로 변해있었다.
학교에서도 나는 달라졌다.
그다음 날, 등교하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내 책상을 둘러싸며
「오늘도 예쁘게 화장해 줄게.」
칠판지우개를 양손에 들고 내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자 내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다가오던 여자애의 코 중심부를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악!」
그 아이는 비명소리와 함께 몸을 젖히듯 뒤로 쓰러졌다.
코에서는 코피가 쏟아졌다.
「입에서 구린내나 풍기지마, 쓰레기 같은게.」
기분 좋을 만큼 줄줄 말이 흘러나갔다.
코피가 난 아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피, 피? 뭐야?」
말을 더듬으며 패닉상태가 됐고
주변에 있던 무리의 다른 여자애가
「괜찮아? 괜찮아?」
하며 코피가 난 여자애를 살폈다.
그중 또 다른 한 명이
「무슨 짓이야, 너!」
소리치며 내게 빠르게 다가왔고
나는 그 여자애의 입을 강하게 발로 후려쳤다.
그 애는 발차기에 넘어지진 않았지만 맞은 곳이 나빴는지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입에서 피가 났다.
남은 주변 무리의 아이들의 얼굴이 새파래졌고
「미, 미안해, 그만해.」
누군가 말을 내뱉은 순간,
담임이 와서 나를 저지했다.
상담실로 불려갔을 때 담임, 생활주임, 부교장 앞에 선 나는
담임이 내가 괴롭힘 당하는 걸 알고 있던 것,
3년 간 내가 당했던 일들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을
담담히 설명했다.
담임은 아저씨처럼 입만 뻐끔거렸고
이마에서는 비 오듯 땀을 흘렸다.
그 후에 저쪽 부모가 오기도 하고 우리 집에서 숙모가 가기도 했지만
나는 특별히 동석하는 일이 없었다.
「사과할 필요도 없고, 싫다면 나가지 않아도 된단다.
나는 네가 한 말을 신용하고 있어.」
부교장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싫다기보단 나는 딱히 뭐가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자 숙모가 기쁜 듯이
「네가 괴롭힘 당한 것이 인정됐어.」 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다음 날도 나는 평범하게 학교에 나갔다.
어제 그 두 명은 쉬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나는 내 인생을 살기 위해 학교를 졸업하고 싶을 뿐이었고
그 이외의 일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반의 분위기가 달라졌는데,
다들 얇은 유리라도 다루는 듯한 느낌이었고
반 아이들도 더는 내게 접근하지 않았으며
질 나쁜 장난을 치는 일도 없어졌다.
나는 응어리가 날아간 듯 편안한 마음으로
졸업까지 아무 일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졸업하고 나는 곧바로 상경했다.
처음에 딱 한 번, 아파트 보증인으로 아저씨를 불렀고
그 이후 밤일 등으로 생계를 채워 대학까지 졸업한 후,
지금은 임상심리사 자격을 따서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할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이겨나갔다.
문득 옛일을 떠올리면
마치 한바탕 꿈이라도 꾼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도 아직 선명하게 목에 남은 멍을 볼 때마다
아, 현실이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내 경험담이다.
토우뵤우의 가계(家系)를 잇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꼭 코멘트 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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