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괴담] 하치샤쿠사마(팔척귀신) 1
번역: NENA(네나)
908 1/1 sage 2008/08/26(火) 09:45:56 ID:VFtYjtRn0
아버지 본가는 집에서 차로 2시간 좀 안 되는 곳에 있어.
농가인데 뭔가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고등학교 올라가고
바이크를 탈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곧잘 혼자서 놀러가곤 했지.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잘 와주었구나' 하시며 기쁘게 맞이해주셨고.
하지만 마지막으로 갔던게 고3을 올라간 직후였으니
벌써 10년 이상이나 가지 않은 게 되는데,
결코 '가지 않았다' 가 아니라 '가지 못했던' 거야.
그리고 그 사정은 이러하다.
봄방학에 막 들어섰을 무렵, 날씨가 너무 좋아 할배 집으로 바이크를 몰았어.
아직은 좀 추웠지만 툇마루가 뜨끈하니 기분좋길래 거기서 얼마간 늘어져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포포, 포폿 포, 포, 폿...」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기계적인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내는 듯한 느낌으로.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보'라고 들렸던 거 같기도 해.
이건 뭐지하는 생각에 두리번거리다 마당 담장 위로 모자가 있는 것을 발견함.
담장 위에 놓여있던 건 아님.
모자는 그대로 옆으로 이동해 울타리가 끊어진 곳까지 다다랐고,
여자 하나가 보였어. 그래, 모자는 그 여자가 쓰고 있던거였음.
그 여자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
그런데 말야.
마당 담장의 높이가 2m정도 되거든.
그 담장 위로 머리를 내밀 수 있다니
대체 얼마나 키가 큰 여자인 건지...
그렇게 놀라고 있자니 여자는 다시 조금씩 이동해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어. 모자도 함께.
또한 어느샌가 「포포포」 거리던 소리도 사라져 있었고.
그땐 키가 큰 어떤 여자가 엄청난 높이의 통굽부츠를 신었거나,
아니면 큰 키높이 신발을 신은 남자가 여장을 했구나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어.
이후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아까 있던 일에 대해 얘길 하게 됐는데..
「아까 엄청 큰 여자를 봤어. 여장을 하고 다니는 남자가 있나봐.」
여기까진 '그러니~' 정도 밖에 반응이 없었거든,
근데
「울타리보다 키가 큰 거 있지.
모자를 쓰고 "포포포"인지 뭔지 이상한 소릴 냈어.」
라고 말한 순간,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췄어.
아니 진짜로 뚝, 하고 멈추더라고.
그다음부터는 언제봤니, 어디서 봤니, 담장보다 어느정도 크더냐 등등
할아버지가 화난 듯한 얼굴로 속사포처럼 내게 질문을 쏟아냈어.
할아버지의 기세에 눌리면서도 그 말에 대답을 하자,
갑자기 입을 다물고는 복도 쪽에 있는 전화로 달려가 어딘가로 막 전화를 걸더라.
미닫이문이 닫혀있었기 때문에 무슨 얘길 하는지는 알 수 없었어.
기분 탓인지 할머니도 떠는 것처럼 보였던 거 같아.
할아버지는 전화를 끝냈는지 다시 돌아와서는
「오늘은 묵고 가거라. 아니, 오늘은 그냥 돌아가면 절대 안 된다.」
라고 하시는 거야.
――뭔가 대단히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 버린 건가?
나는 필사적으로 내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떠올리려 했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짐작 가는 바가 없었어.
그 여자도 내가 보러 갔던 게 아니라 그쪽이 갑자기 나타났던 거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자네, 뒤를 부탁하네. 나는 K씨를 데리러 다녀올게.」
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경트럭을 몰고선 어딘가로 가버리셨음.
할머니에게 쭈볏쭈볏 물어보니,
「하치샤쿠사마(八尺様:팔척귀신)에게 홀려버린 듯 하구나.
할아버지가 어떻게든 해줄 거야. 아무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해주더라.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드문드문 얘길 해줬어.
이 근방에서는 '하치샤쿠사마' 라는 골칫거리가 존재한다.
커다란 여자의 모습을 한 하치샤쿠사마는
이름 그대로 팔척(八尺:하치샤쿠)의 키를 갖고 있다.
'보보보보' 거리며 남자같은 목소리로 괴기한 웃음소릴 내고 다닌다.
사람에 따라 상복을 입은 젊은 여자거나 검은 기모노를 입은 노인,
혹은 일본식 전통 작업복을 입은 중년 여성의 모습 등 보이는 외견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여성이며 비이상적으로 키가 매우 큼,
머리에 뭔가를 두르거나 쓰고 있음, 여기에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가졌다고 한다.
옛날에 어느 여행자에게 붙어 따라왔다는 소문이 있지만 확실하진 않음.
이 지역(지금은 ○시의 일부지만 옛날엔 x마을이었음)의
지장보살에 의해 봉인되어 있기에 다른 곳으로는 나가지 못함.
하치샤쿠사마에게 홀리게 되면 며칠 내로 저주를 받아 죽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치샤쿠사마의 피해가 나왔던 건 5년 정도 전.
그리고 이건 나중에 들은 것.
지장보살에 의해 봉인됐다는 얘기에 대해,
하치샤쿠사마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하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게 한정되어 있대.
그리고 그 길에 있는 마을의 경계에 지장을 모신 거라고 해.
하치샤쿠사마의 이동을 막기 위해
그것은 동서남북의 경계로 전부 해서 4곳 정도 된다나 봄.
근데 애초에 왜 그런 걸 이곳에 묶어두는 거냐고 물어보니,
주변 마을과 무언가의 협정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수리권(水利権)을 우선해준다거나 하는.
하치샤쿠사마에 의한 피해 자체는
몇 년~십 수년에 한 번 정도밖에 안됐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의 입장으론 그렇게 유리한 협정을 맺을 수 있다면
그냥 괜찮았다는 생각이었나 봐.
근데 말야.
이런 얘길 들어봤자 전혀 리얼하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더라고.
당연하겠지만.
그리고 그 사이 할아버지는 어느 노파를 데리고 돌아왔음.
「일이 골치 아프게 됐구먼. 지금은 이것을 가지고 있게.」
K씨 라는 노파는 그렇게 말하며 부적을 건내줬어.
그리고는 할아버지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가 뭔가 부산스럽게 움직였지.
할머니는 그대로 나랑 같이 있었는데,
화장실 갈 때도 따라왔고 아예 화장실 문을 완전히 못 닫게 하더라.
그쯤 되자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뭔가 정말 위험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음.
잠시 후, 할아버지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 어느 방으로 들어가게 됐어.
그곳 창문에는 전부 신문지가 빈틈없이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부적이,
그리고 방의 네모퉁이에는 소금이 놓여 있었지.
또한 나무로 만들어진 아담한 상자 같은 게 있었는데
(제단이라 부를만한 건 아니었음), 그 위에는 작은 불상이 놓여있었어.
그리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요강'이 2개 준비되어 있었음.
볼일은 이걸로 보라는 얘긴가...
「금방 날이 저물 거야. 잘 듣거라, 내일 아침까지 절대로 이곳을 나오면 안 돼.
나는 물론 할머니 모두 너를 부를 일도 없거니와 네게 결코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어디 보자, 그래 내일 아침 7시가 될 때까지는 절대로 이곳을 나오지 말거라.
7시가 되면 내가 널 데리러 가마. 집에는 연락해뒀다.」
할아버지가 매우 진지한 얼굴로 말했기에
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
이어서 K씨가
「방금 네 할아버지가 한 말을 꼭 지켜야 한다. 부적도 몸에서 떼지 않도록 하고.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불상 앞에서 기도하도록 하게.」 라는 말을 덧붙였음.
TV는 봐도 된다고 해서 켰지만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고 걱정만 커져갔어.
방에 갇히기 전 할머니가 준 주먹밥과 과자들 역시 전혀 먹을 맘이 들지 않았고..
그렇게 방치된 채로 이불에 둘둘 말려 정체 없이 덜덜 떨기만 했음.
그런 상황에서도 어느샌가 잠이 들었던 거 같은데,
다시 눈을 떴을 땐 뭔진 기억 안 나지만 심야방송이 나오고 있었어.
그때 내 시계를 봤는데 오전 1시를 막 지나고 있었던 거 같아.
(이때 휴대폰을 들고 가지 않음)
뭔가 안 좋은 시간에 일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창문 유리를 콩콩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작은 돌 같은 걸 던져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
바람 때문인지 누가 정말로 두드리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필사적으로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한차례 진정하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역시 무서워서 TV소리를 크게 한 다음 억지로 TV에 집중하려 했어.
그리고 그때,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음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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