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괴담] 여행지에서 만난 가족

번역: NENA(네나)
원제: 箱根の怖い話 #223
이건 얼마 전, 가족과 하코네로 여행 갔을 때
체험했던 이야기입니다.
여름엔 일이 바빠 아내와 5살이 된 아들과
아무 데도 가지 못했기에 주말을 이용해서 1박 2일로
하코네로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당일은 날씨운도 좋아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하코네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가이드 북을 한 손에 들고
계획을 세우는 아내와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뭐라 할 수 없는 행복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것저것 알아본 결과, 아내와 아들은 하코네가 처음이었기에
정규 코스를 돌기로 정했습니다.
먼저 들린 곳은 아시노코 호. 유람선에 올랐어요.
아들은 퍽이나 기뻤는지 배 위를 들뜬 상태로 돌아다녔죠.
「위험하니까 뛰어다니면 안 돼.」
엄하게 주의를 주는 아내도 어딘가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바람을 쐬고 있는데,
문득 어느 승객에게 눈이 멈췄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손을 잡고 배의 난간에 서있었어요.
아이는 우리 아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맑은데 그 두 사람이 서 있는 장소만
검은 그림자로 뒤덮인 것처럼 그늘진 것처럼 보였어요.
그땐 그것만으로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유람선을 내려와서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카레라이스를 먹고 있는데 맞은편 좌석에 아까 유람선에서 본
모자(親子)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왜 그래?」
아내가 카레를 뜬 채로 굳어있는 내게 물었습니다.
「...아니, 아까 유람선에서 본 사람들이 있어서.」
「별일이네. 뭔가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냐.」
왜일까요. 채광이 좋은 밝은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자가 앉아있는 자리만 빛이 들지 않는 것처럼
주변의 풍경보다 어둡게 보인다는 걸 깨달았어요.
점심을 먹은 후, 케이블카를 타고 오오와쿠다니로 갔습니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하얀 분연(噴煙)의 풍경을 즐기고 있는데,
아내와 아이가 기념품을 사겠다며 가게로 향했습니다.
두 사람이 쇼핑을 간 사이, 저는 흡연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기로 했어요.
그리고 불을 붙인 담배를 입에서 떨어트릴 뻔했습니다.
설마 또 마주칠까 싶었던 그 모자가 사람들 사이에 서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에요.
변함없이 그들이 있는 장소만 음울한 분위기로 뒤덮여있었습니다.
아시노코호나 오오와쿠다니 모두 하코네를 대표하는 메이저급 관광명소니까
이런 우연도 없진 않을 거다,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타이밍이 너무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습니다.
─ 혹시 따라다니고 있는 건가?
그런 바보 같은 피해망상을 품을 정도였어요.
얼마 지나 기념품을 양손에 든 아내와 아들이 왔고
저는 두 사람을 재촉해 오오와쿠다니를 뒤로 했습니다.
숙박 예정인 여관방에 도착해서야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피곤해?」
아내는 제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챈 것 같았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세 번이나 우연이 지속된 일을 설명하자
아내는 그저 웃을 뿐이었습니다.
「너무 신경 쓴 거 아냐.」
「알긴 하지만, 뭔가 그 모자의 분위기가 기분 나빠서.」
「그러게.」
마음을 추스르고 저녁을 다 먹은 뒤,
셋이서 온천을 즐긴 후 탁구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 무렵엔 기분 나쁜 모자에 대해서도 완벽히 잊고 있었어요.
「먼저 가, 도구 반환하고 갈게.」
아내와 아들을 먼저 방으로 돌려보내고
저는 탁구 라켓과 볼을 프런트에 반환하러 갔습니다.
조금 사이즈가 작은 여관 슬리퍼를 끌며 계단을 내려갔을 때,
무심코 발이 멈췄어요.
진짜 말도 안 돼....
그 모자가 2층 복도 구석의 계단에 서서 저를 바라보고 있던 겁니다.
단 몇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도
두 사람의 얼굴은 검은 물감이라도 뒤집어쓴 듯 새카매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검은 어둠을 지고 있는 듯 그 모자의 주변만 어두컴컴했어요.
네 번째의 우연.
저 모자는 역시 뭔가 이상하다....
등줄기로 소름이 치솟았습니다.
도망치듯 계단을 뛰어내려 갔어요.
그때였습니다.
누가 등에 업힌 듯한 충격과 함께
저는 앞으로 고꾸라지듯 계단을 굴렀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여관 사람이 저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계단 아래에서 한 순간 의식을 잃었다고 합니다.
머리가 멍하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어요.
「아, 가족 분들입니까?」
여관 사람이 계단 위쪽을 향해 말하는 게 보였습니다.
희미한 시선을 계단 위로 향하자,
예의 그 검은 모자가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고 있었습니다.
「가족이 아냐!!」
저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자 모자는 복도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여관 사람은 저를 놀란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이후, 그 기묘한 모자를 보는 일은 더는 없었어요...
어쩌면 저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의 가족이 되어
끌려가고 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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