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괴담] 금후(禁后), 판도라 1
번역: NENA(네나)
이것은 제 고향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금후(禁后)』 라는 것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읽는지는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들 사이에서 『판도라』 라고 불렀어요.
제가 태어난 동네는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이었습니다.
눈에 띄는 놀이터 하나 없이 적적한 곳이었는데 딱 하나, 눈길을 끌만한 것이 존재했습니다.
마을 밖, 논바닥이 끝없이 이어진 길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던
어느 빈 집 하나가 그것이에요.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은 듯 매우 낡았던 그 집은 케케묵은 이 시골 구석 안에서도
유달리 세월의 흔적을 뽐내던 집이었습니다.
그것뿐이었다면 단순한 오래된 빈집... 정도에서 끝났을테지만
그것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모님을 포함한 마을 어른들의 과잉반응.
그 빈집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크게 혼이 났는데
때로는 몽둥이로 매섭게 때리기까지 할 정도로 역정을 내실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집 아이나 다 똑같았고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또 하나는 그 빈 집에는 왜인지 현관문이 없다는 것.
창문이나 전면 유리창은 있었지만 출입할만한 현관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이전에 누군가가 살았던 것이라면 어떻게 출입을 했을지?
창문이나 유리창을 통해 들어갔을까?
...등등 불가사의한 요소가 흥미를 일으켜
언제부턴가 '판도라'라는 이름과 더불어 당시의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이슈거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선 『금후(禁后)』 라는 것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요)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라며 탐험을 시도해보려 했지만,
평소 그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에게 크게 혼이 난다는 사실이
몸에 배어 있었기에 좀처럼 실천되지는 않았습니다.
장소 자체는 어린애들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는 데다
주변에는 다른 사람 눈도 없었으니 아마도 다들 한 번쯤은
그 빈집 앞까지 가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간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 아무 일 없이 지내고 있었죠.
그리고 제가 중학교로 올라가고 몇 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어느 남자애가 판도라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꼭 한 번 보고 싶다'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이 아이를 A라고 하겠습니다.
A군의 집은 어머니가 본디 이 마을 출신으로, 다른 지역으로 시집을 갔다가
이혼을 계기로 다시 본가인 조모 할머니 댁으로 돌아왔다는 것.
때문에 A군 자체는 이 마을이 처음이라 판도라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어요.
그 당시 저와 사이가 좋았던 B군, C군, D코가 있었는데
그중 B,C군이 그와 사이가 좋았기에 자연스럽게 그는 저희들 무리에 들어오게 됐죠.
다섯이서 모여 쓸데없는 대화를 이어가던 중 저희들은 당연스럽게
판도라라는 단어를 언급하게 됐고, 그것이 궁금해진 A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어요.
「우리 엄마랑 할머니도 여기 출신인데 그거 물어보면 나도 혼날까?」
「그냥 혼나는 걸로는 안 끝나. 우리 아빠랑 엄마는 엄청나게 때린다고!」
「우리 집도. 이해 안 가지 않냐?」
A군에게 판도라에 대해 설명을 하며 모두들 혼내기만 하는 어른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강의 설명이 끝나자 그다음으로는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의문인
'빈 집에 무엇이 있는가'가 화제로 올랐어요.
「거기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몰라. 들어간 적 없도 없는 데다 말만 꺼내도 혼나는걸. 알고 있는 건 어른들 뿐이지 않나?」
「그렇담 뭘 숨겼는지 우리 힘으로 알아내 보지 않을래?」
A는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부모님께 혼나는 게 싫었던 나와 다른 3명은 처음엔 꺼려했지만
A의 말에 반쯤 넘어간 것도 있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던 울분을 풀자는 말에 결국 모두들 동의하게 됐어요.
그 이후 여러 얘길 하다가 항상 우리와 자주 어울리던 D코의 여동생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총 6명이 일요일 낮에 작전을 결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당일. 기대를 한껏 안은 얼굴로 빈 집 앞으로 집합.
어째선지 다들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 왔는데,
거기서 꺼낸 스낵이나 과자 등을 추리며 들떠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까 위에 언급했던 대로
문제의 빈집은 논으로 둘러싸인 곳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으며
역시나 현관은 없었어요.
건물은 2층 구성으로 창문이 2층에 달려있었기에
안으로 들어가려면 1층의 전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문 변상 정도는 별로 큰 일도 아냐.」
그렇게 말하며 A군은 전면 유리창을 힘껏 깨부수었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걸로 확실하게 혼나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그 뒤를 따랐어요.
그곳은 거실이었습니다.
왼측에는 부엌, 정면의 복도로 나가면 그 왼쪽에는 욕실과 그 끝에 화장실이,
오른쪽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본래 현관이 존재했을 법한 공간이 존재했어요.
대낮이기도 해서 꽤나 밝았는데도 불구하고 현관이 없는 탓인지
복도 쪽은 어두컴컴하게 보였죠.
낡아빠진 외관에 비해 안은 예상보다 깨끗... 이라기보단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구 같은 물건은커녕 사람이 살았던 흔적 자체가 없었고
거실과 주방이 꽤나 널찍한 것을 빼면 극히 평범한 형태.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평범하네~ 물건 같은 거라도 남아있을 줄 알았더니.」
아무것도 없는 거실과 주방을 여기저기 살펴보며
남자 셋은 재미없다는 듯이 가지고 온 과자를 와작와작 집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그렇담 비밀의 열쇠는 2층이 아닐까?」
저와 D코는 D동생의 손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복도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계단이...' 하며 복도로 나온 순간,
저와 D코는 심장이 멈출 뻔했습니다.
왼쪽으로 펼쳐진 복도에는 중간에 욕실이 있고 그 끝에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 사이쯤 위치에 경대(거울이 달린 화장대)가 놓여있었고
그 바로 앞쪽으로 길쭉한 받침봉 같은 것이 서있었어요.
그런데 그 봉에 머리가 걸려있던 것입니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가발같은 것으로 형태를 만들어놨다고나 할까,
롱헤어의 여자 뒷모습 같은 머리가 그대로
그곳에 세워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설명이 이상했다면 죄송합니다.)
위치적으로도 평균적인 여성의 신장이라면
대체적으로 그 부근쯤 머리가 올만한 위치에 봉 높이가 조절되어 있어서
마치
「여자가 경대(화장대) 앞에 앉아있다」
는 것을 표현한 것과 같은 풍경.
단번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뭐야, 뭐야!? 뭔데 저거!?」 라며 가벼운 패닉에 빠진 저와 D코.
비명소리에 뭐야뭐야 하며 복도로 나온 남자 3명도 의미불명한 광경에 아연실색.
D의 여동생만이 '저게 뭐야?' 라며 멀뚱히 있었습니다.
「저게 뭐지? 진짜 사람 머리카락인가?」
「몰라. 한번 만져볼까?」
A군과 B군이 꺼낸 말에 C군과 저는 필사적으로 막아섰습니다.
「위험하니까 그만둬! 엄청 기분 나쁜데 저거 반드시 일 생긴다고!」
「맞아, 그만둬!」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게 볼 수밖에 없는 광경에 공포를 느끼며
일단은 모두들 거실로 모였습니다.
거실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복도 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빴어요.
「어쩔거야...? 복도를 지나가야 2층으로 갈 수 있는데.」
「나는 싫어. 저런 기분나쁜걸.」
「나도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들어.」
C군과 저, D코 이렇게 셋은 너무나 예상외의 것을 본 탓인지
완전히 탐색의욕을 잃은 상태.
「저게 보이지 않도록 가면 괜찮다니까.
만약 2층에서 뭐가 나오더라도 계단만 내려가면 바로 앞이 출구잖아.
그것도 지금은 대낮이라고?」
하지만 A,B 두명은 어떻게든 2층을 보고싶은 듯,
이미 의욕을 잃은 저희 세명을 계속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어라? D코, ○○짱은?」
「엇?」
그제야 모두들 깨달았습니다.
D의 동생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유일한 출구였던 유리창 앞에 있었으므로
밖으로 나갔을 가능성은 제로.
넓긴 했지만 거실과 부엌이 한 눈에 내다보이는 곳이었고
D의 동생은 그곳에 있어야 했지만 없었어요.
「○○!? 어딨어!? 대답해!!」
D코가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잠깐, 혹시 위로 간 건...」
그 한마디에 전원이 복도 쪽을 응시했습니다.
「어떡해! 왜 간 거지!? 뭘 하는 거야 대체!」
D코는 울먹이며 그렇게 소리쳤어요.
「진정해! 일단 2층으로 가보자!」
더 이상 무섭다며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모두들 곧바로 복도로 나가 계단을 향해 뛰었습니다.
「어이~! ○○짱!?」
「○○! 적당히하고 얼른 나와!」
D의 동생을 부르며 계단을 올라갔지만 대답은 없었어요.
계단을 다 오르자 그곳엔 방이 두 개 있었습니다.
양쪽 다 문은 닫혀있었습니다.
먼저 바로 정면쪽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 방은 밖에서 봤을때 창문이 있던 방이었어요.
안에는 역시 아무것도 없었고 D의 모습도 그곳엔 없었습니다.
「저쪽인가보다.」
우리는 그곳을 나와 다른 쪽으로 다가갔고
천천히 문을 열었습니다.
D가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곳에 굳어있어야 했죠.
─ 다음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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